2026년, 전설적인 밴드 시카고의 공동 창립 멤버 월터 파라자이더가 알츠하이머 투병 끝에 향년 80세로 별세했습니다. 그의 음악적 유산을 기립니다.
월터 파라자이더, 시카고 밴드의 빛나는 별이 지다
2026년,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던 전설적인 밴드 시카고(Chicago)의 공동 창립 멤버이자 플루트 연주자 월터 파라자이더(Walter Parazaider)가 지난 수요일 별세했습니다. 향년 80세. 그의 가족들은 그가 6년간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해왔다고 발표했습니다. 1967년 밴드 창립부터 2017년 은퇴까지, 50여 년간 시카고의 혁신적인 사운드를 지탱해온 그의 사망 소식은 음악계에 큰 슬픔과 함께 그의 위대한 유산을 다시금 조명하고 있습니다.
록 음악에 호른 섹션을 도입한 선구자
파라자이더는 시카고의 초기 구상 단계에서부터 밴드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67년 밴드가 결성될 당시, 그는 록 밴드에 호른 섹션 전체를 풀 멤버로 영입하자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시도였으며, 오늘날까지도 흔치 않은 개념으로 남아있습니다. 드폴 대학교에서 클래식 클라리넷을 전공하며 쌓은 탄탄한 음악적 기반은 그가 플루트, 클라리넷, 다양한 색소폰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플루트 솔로는 시카고의 대표 히트곡 “Colour My World”에서 특히 빛을 발했습니다.
딸 펠리시아의 가슴 아픈 추모
월터 파라자이더의 사망 소식은 그의 딸 펠리시아 파라자이더(Felicia Parazaider)가 수요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전했습니다. 펠리시아는 “아빠, 나의 영웅이 떠나셨어요. 평화롭게 약 20분 전에 가셨습니다. 더 이상 고통도, 투쟁도 없습니다”라며 깊은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지난 6년간의 투병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고백하며, 아버지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아빠, 당신은 우리의 세상을 색칠했어요. 사랑해요, 내 양귀비, 내 친구.”라는 딸의 메시지는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은퇴 후 이어진 투병의 시간
파라자이더는 시카고 밴드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된 이듬해인 2017년, 심장 문제로 인해 50년간 몸담았던 밴드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습니다. 이후 2021년, 그는 밴드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진단 사실을 직접 밝히며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성명에서 그는 “5개월 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내와 딸들은 물론 저 자신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와 가족의 지지 덕분에 미래에 대해 매우 긍정적입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시카고 밴드의 혁신적인 탄생
1967년 2월 15일, 파라자이더의 부모님 댁 주방 식탁에서 시카고 밴드의 원대한 꿈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테리 캐스(Terry Kath), 대니 세라핀(Danny Seraphine)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밴드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록 밴드에 호른을 필수적인 부분으로 만들자는 그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었습니다. 이후 리 러프낸(Lee Loughnane), 제임스 팬코(James Pankow), 로버트 램(Robert Lamm)이 합류하며 초기 멤버를 완성했습니다. 이들은 ‘더 빅 띵(The Big Thing)’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록과 재즈, 클래식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음악을 시도했습니다.
‘시카고 트랜짓 오소리티’에서 전설로
1968년 피터 세테라(Peter Cetera)가 합류한 후, 밴드는 ‘시카고 트랜짓 오소리티(Chicago Transit Authority)’로 이름을 바꾸고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했습니다. 이듬해 2장의 LP로 구성된 데뷔 앨범은 곧바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밴드명은 간단하게 ‘시카고’로 단축되었습니다. 그러나 1978년, “Chicago XI” 앨범 발매 직후 공동 창립 멤버 테리 캐스의 비극적인 사망은 밴드에 큰 충격과 상실감을 안겼습니다. 파라자이더는 캐스의 죽음을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하며, “팬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밴드를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상업적 성공과 정체성의 고민
테리 캐스 사망 이후 시카고는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의 작업을 통해 피터 세테라(Peter Cetera) 중심의 발라드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1980년대 초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시기 밴드의 실험적인 초기 정신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파라자이더는 이에 대해 “우리가 받아야 할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1억 장 이상 앨범을 판매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1985년 세테라가 솔로로 전향한 후 제이슨 셰프(Jason Scheff)가 그의 자리를 대체했으며, 2016년까지 활동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그의 유산
현재 시카고 밴드에는 로버트 램과 제임스 팬코를 비롯한 일부 원년 멤버들이 은퇴하고, 공동 창립 멤버 중 리 러프낸(Lee Loughnane)만이 밴드를 지키며 그들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월터 파라자이더는 시카고의 영혼이자 록 음악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혁신적인 사운드의 주역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59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그의 아내 재클린(JacLynn)은 “59년간 함께했고 59년간 멋진 세월이었다”며 영원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딸 펠리시아의 말처럼, 그는 우리의 세상을 색칠했으며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영원히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